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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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녹아있는 언어
작성자박요섭
작성일2008/07/20 11:46
조회수: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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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한쪽 눈을 잃은 왕이 있었다. 세명의 화가들을 불러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첫번째 화가는 양쪽 눈이 모두 건강한 모습의 초상화를 그렸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진실이 아니었다. 그래서 좇아내 버렸다. 두 번째 화가는 사실적으로 그렸다. 한쪽 눈은 건강하고, 한쪽 눈은 애꾸인 모습으로 그렸다. 사실이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도 쫓아내 버렸다. 세번째 화가는 건강한 눈이 있는 옆쪽 모습을 그렸다. 비전을 가지고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이 매우 진취적으로 보였다. 이 초상화는 보기에도 좋고, 또 사실에 반하지도 않는 그림이었다. 세 번째 화가에게 상을 주며 칭찬했다고 한다. 지혜란 무엇인가? 일처리 방법을 아는 것이다. 세 번째 화가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왕의 마음을 얻고, 사실과도 충돌하지 않는 일처리를 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항상 진리를 말한다. 그런데 마음을 상하게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 그도 역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요셉은 자기를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을 만난다.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있는 요셉 앞에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 45:5) 용서한다는 말이다. 이 말 속에 용서라는 단어는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용서가 이미 녹아 있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를 앞서 보내신 사명을 이야기한다. 그 말 속에 이미 용서는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부활의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난다. 베드로는 세 번 부인하고, 도망친 면목이 없는 상태이다. 이때 예수님은 왜 부인했냐, 왜 도망쳤냐를 묻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신다는 대답을 듣는다.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신다. 용서라는 단어가 한번도 들어 있지 않지만, 그 속에는 이미 용서가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탁월한 언어생활이다. 말하지 않고도 전달될 수 있는 언어가 진짜 탁월한 언어이다. 이런 언어는 아프지 않다. 이런 언어는 상처입은 심령을 치료한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이런 언어를 접하게 된다. 우리는 과거 어머니에게 잘못을 저지른 적이 많다. 그러나 어머니는 용서를 들먹이지 않는다. 대신 아주 좋은 반찬이 나온다. 이것은 용서의 반찬이다. 국이 식었다. 식은 국을 따뜻한 국으로 바꾸어 주신다. 그 국은 용서의 국이다. 용서라는 말을 한마디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행동을 통해서 용서는 이미 다 녹아서 전달된 것이다. 표현하는 언어보다 녹아있는 언어가 더 탁월하다. 탁월한 언어는 사랑의 가슴에서만 나오는 생수인 것이다. 박요섭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