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태복음 9장 35절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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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균형 맞추기
작성자박요섭 작성일2010/02/21 11:22 조회수: 579

마리아와 마르다는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서로를 거부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예수님이 베다니에 자주 오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어렵다. 누가가 기록한 사건에서 예수님은 중재자가 되어 마르다와 마리아가 드러낸, 극단적으로 다른 두 성격에 균형과 평화를 가져다 주셨다.

인성을 가지신 주님은 '마르다의 사역'을 존중하고 기뻐하셨지만, 신성을 가지신 주님은 '마리아의 사역'에서 우리의 영원한 사명이 정점을 이룬다고 보셨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한 집에서 같이 사는 한, 둘 사이에는 역동적인 긴장이 있게 마련이다. 양극단이 한 집에 살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가 있어야 화목할 수 있다.

전형적인 지역 교회에서 마르다와 같은 사람들은 종종 이런 의문을 갖는다. "도대체 '저 마리아'는 왜 부엌에 와서 나를 돕지 않는 거지? 그렇게 영적인 척하려면 여기 몸소 와서 이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을 도와야 마땅해, 정말 영적인 사람이라면 바닥에서 일어나 흐느껴 우는 것을 멈추고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도와야지."

교회 안에 마리아와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혼잣말을 할 것이다. " '저 마르다' 가 음식 만드는 일은 이제 잊었으면 좋겠어, 정말 영적으로 갈급하면 먹을 생각조차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앞치마를 던져두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끓어야 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그저 단순하게 기도하는 거야, 그렇게 기도할  때 육체적인 섬김에서 세속적인 색채를 벗녀낼 수 있을 거야."

사실 예수님이 그 집에서 진정으로 평안함을 누리시려면 양쪽 사역이 다 필요하다. 주님은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신이자 인간으로서 안식처를 찾기 힘드셨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분은 신성과 인성을 똑같이 편안하게 섬김 받으실 장소를 찾고 계신다. 우리 가운데 그분이 거하시는 것을 방해하는 최대 장애물은, 교회 안에서 결코 평안하게 지내지 못하는 마리아와 마르다 둘이다.

박요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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